점과 철학

이히히양님 블로그의 "가장 재미없는 농담"에서 트랙백합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랄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해야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포스팅 거리가 생겼으니 하나 써 보기로 하지요;;;

우리 나라의 경우에, 통계를 활용한 과학적 조사 등을 생략한 채 그에 비해 신속하고 저렴하게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게 해주는 업소들이 '철학관'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통속적인(?)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하면 '-장이'가 붙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쟁이'가 붙는 부정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하게 됩니다만...

'점(을)치다'라고 하면 앞일을 미리 내다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미리 내다본다는 뜻에는 꼭 초자연적인 힘을 동원하여 내다본다는 것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A교수가 점쳐보는 BL산업의 미래"하는 식으로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경우에 A 교수가 소위 '점쟁이'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편, 조선 시대 이전의 지식인들이 앞일을 내다보는 방법 중 하나가 전통적인 철학적 사고체계를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음양오행의 원리라던가 등의 동양 고유의 철학 체계로서 세상의 이치/본질을 파악하려고 했고, 그것을 응용/적용해 앞일을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려고 했습니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이 서구 철학으로부터 발생한 이런저런 과학적 수단을 통해 앞일을 미리 내다보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지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의 차이였을 뿐이지요. 실제로 철학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학부 철학 입문 시간에 나온 이야기인데... 뭐 서구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동양철학(...)적 수단에 의한 미래 예측이 과학적인 수단을 갖추지 못한 자의 자기위로(...)라고 혹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때의 지식수준에 맞는 진지함의 정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그리 한심하게 볼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한 점에서, "철학이 점을 치는 건가?" 하면 어떤 의미로는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사실, 철학이 누군가의 미래에 대해 "너는 장래에 무엇이 되겠구나"하는 것 등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는 않겠지만, 나와 주변에 대한 사고력이라고 해야할지 통찰력을 길러주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나와 세계의 본질 및 미래에 대해 더욱 잘 통찰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적 방법론을 택하든 서구적 방법론을 택하든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철학자가 직접적으로 철학의 이름으로(?)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래 예측에 사용되는 다양한 과학적 기법들의 바탕에는 역시 (서구) 철학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간의 경험과 사고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미래까지 추측해볼 수 있게 할 수 있게 하는 틀(?)을 제공해주는 학문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에서 발생한 합리적인 방법론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했을 때 반드시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미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방법을 이용한 예측 실패의 경우와는 달리, 그러한 잘못된 예측조차도 기존의 현상을 보는 하나의 반성적인 틀을 제공해 줄 수 있고, 기존 예측을 반성하는 틀을 제공함으로서 장래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해주니 매우 훌륭한 예측의 수단이 아닐까요.

한편, 미래를 알아본다고 하면 웬지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인간의 탐욕'이 연상되기는 하지만, 미래의 예측은 인간의 활동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나 중요한 미래 예측을 위한 합리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해주는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철학관'들이 '철학'이라는 낱말로서 자신들의 상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철학이라는 것이 그처럼 고상하고 합리적으로 세상의 본질과 그 앞날을 고찰해볼 수 있는 힘을 인간에게 제공해주는 훌륭한 학문이기 때문에, '앞날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소위 '점'과 나름대로는 의미가 통하면서도 고상하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업태의 이미지를 제고시켜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겁니다. 우리 북쪽에서 '강제노동수용소'가 아니라 '노동교화소'(맞나요;)인것과 같으려나요;;;

제 경우에는 사실, 철학이라고 하면 역시 '과학적 방법에 비해 저렴한 전문가에 의한 미래 예측'을 떠올리는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위의 수업을 듣고 '점을 친다'는 것에 대해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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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바바 | 2008/04/16 12:58 | 일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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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ina at 2008/04/16 18:19
과학적인 방법론... 가설을 세우고 현상을 관찰해 검증을 해봐서 그것이 세상의 이치를 잘 설명하는지 확인해 본다. 아니면 말고.. 새 가설을 세워 본다...는 것 자체가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것입니다. 수백년 전 유럽의 과학수준은 동양에 비해 전혀 나을 게 없었지만 그 방법론 하나 잘 만든 덕분에 지금껏 그들이 문명의 발전을 주도해 왔지요.

가끔 동양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분들 중엔 그 방법론 자체를 거부하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대략 난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죠. 자신이 주장하는 것을 반증해 낼 방법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분들과 토론해서 "승리"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금강불괴? 서양에도 별자리점을 친다든가 하는 관습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동양적인 점장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뭐라고 할 건 아닙니다만, 이런 비과학적 방법론(?)이 사회의 주류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구바바 at 2008/04/16 21:48
Lina님께... 말씀대로, 조선시대 이전의 우리나라에는 '과학'은 없었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이전의 이런 저런 발명품을 보고 '과학적'이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게 생각되는 바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제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점을 친다'는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뭔가 터부시되고 있는 행위(이면서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행위)로서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것이 아주 진지하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한 것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그 내용물이 음양오행의 원리(...)였다면, 지금은 유럽에서 수입된 과학적 방법론이겠지요. 오늘날 '철학관'의 '철학'과 '철학과'의 '철학'이 동일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주된 방법론이 서구에서 수입된 그것...이긴 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가 사용하던 방법론들이 완전히 폐기되어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왜 그렇지 않다고 보아야 하는지는 제가 동양 사상을 제대로 공부 안해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손에 쥐고 있는 패(?)는 유용하게 쓰는 방법을 궁리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패 덕분에 판세를 판단함에 있어서 착오가 생겨서는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합한 문제에 대해 신비주의적인 차원에서 동양적 관념을 가져와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곤란하겠죠;
Commented by 이히히양 at 2008/04/17 23:45
'(합리적인) 미래 예측' 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군요 :)
제 경우에는 철학이라고 하면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으로 나누어지는 그거?' (동양철학은 안중에도 없네요 OTL) 그 중에서도 논리학, 분석철학. 그쪽이라서 저런 생각은 못 해봤네요. ^ㅂ^; 이히히.
Commented by 구바바 at 2008/04/22 19:06
이히히얀님께...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뭐, 악용할 여지도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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