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루쨩만 비난받아 마땅한걸까...

유피 폭주사건을 보면 브리타니아 '기사'들도 이상한 것이, 그런 상황에서 유페미아 황녀가 죽이라했다는 이유로 그대로 화기를 갈겨대다니 말입니다. 나이트메어에 탑승하는, '기사'라는 칭호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 - 피식민지 주민들은 넘보기 힘든 고귀한 신분 - 치고는 너무나 분별없는 행동이 아닌가싶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긴 하겠습니다. 그러나, 유피 폭주의 경우는 상식인의 관점으로 볼 때 '미쳐버린 것'이 객관적으로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군의 주요 장성을 쏘고, 아무리 피식민지 주민이라지만 비무장의 민간인을 총으로 쏜다는 것은 정상인의 행동이라 할 수 없지요. 상관이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신이 상실되어버렸다면, 그 지시를 그대로 듣기보다는 적절한 비상조치(예컨대 그 상황에서는 달튼 장군의 지시에 따른다던가...)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리타니아의 기사들은 즐겁게 화기를 갈겨댔습니다.

이상의 사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브리타니아(인)는 '피식민지 주민을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루루쨩이 실수로 유피에게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루루쨩의 기어스 누출 없이도 크로비스와 브리타니아는 신주쿠에서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제22화에서의 학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루루쨩이 아니라, 피식민지 주민을 인간으로서 취급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브리타니아의 체제 그 자체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레븐을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는 사고가 팽배한 브리타니아가 '행정특구 일본'을 얼마나 이상적으로 꾸려갈 수 있을까요? 물론 유피는 아름다운 선의로 일을 시작하긴 했습니다만, '행정특구 일본'의 운영은 유피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특구 일본이 일단 설립되고 루루쨩이 이번과 같은 삽질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그마한 계기만 생긴다면 기회만 노리고 있던 브리타니아인들은 그 '일본'에 무자비한 탄압을 가할 것이 분명합니다. 유피가 저지른 것 이상의 학살을 저지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서로 다른 민족간에 지배-피지배 관계가 성립하고 있는 이상 그 '불씨'는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행정특구 일본'에서의 브리타니아인과 일본인의 사소한 싸움조차 그 불씨가 될 수 있겠죠.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반론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비정상적인 황녀의 한마디에 즐겁게 학살을 수행해버린 그들입니다.

루루쨩이 잠자코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수없이 발생하고 있는 브리타니아에 의한 '합법적인 희생'은 어떻게 합니까.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권력을 잡으려는(내지는 잡고 있는) 자는 를르슈 뿐이 아닙니다. 유피나 스자쿠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다만 그 희생이 법이라는 이름 아래 잘 포장이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10년쯤 지나면 유피와 스자쿠의 활약에 의해 괜찮아질거야'하고 얌전히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확실히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루루쨩 같은 존재가 기득권층에게 경종을 울려줌으로 해서 변화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사실, 유피가 '행정특구 일본'의 발상을 발표한 것부터 제로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뭐 결론은 그렇습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루루쨩을 100% 두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루쨩만 탓하기도 그렇다는거죠. 루루쨩의 악행(!)은 현재의 비인간적 체제를 그 체제의 밖에서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입니다. 유피와 스자크가 좋은 말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브리타니아의 이름 앞에 수많은 합법적인 희생이 일어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루루쨩의 노선이 아닌 유피나 스자크의 노선을 걷는다 하더라도 희생은 여전히 발생합니다.(실은 스자크 본인이 크로비스 암살의 죄를 덮어쓰고 처형될 뻔하기도 했죠.) 그리고 유피나 스자크같은 '좋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브리타니아의 체제/존재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제가 혁명이라던가를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루루쨩을 좋아하다보니. 더불어, 침략자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이 그렇게나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고 해서 한 번 끄적거려 본 것이지요. --;


by 구바바 | 2007/03/24 14:48 | 기어스의 바른 사용법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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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arin at 2007/03/24 15:02
애초에 이 애니메이션은 시작할 때부터 크로비스 총독께서 친히 '모모 구역 일레븐 다 쳐죽여라.'는 명령을 내렸고, 군대는 매우 기분좋게 따랐지요;;;ㅡㅜ 물론 이 경우 여론 플레이를 좀 했지만, 그건 민중들 쪽 문제고...군대 자체는 일레븐 학살에 별로 거부감이 없어 보였죠;;;

아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알~쏘았었죠;;;; 그런 군대니, 유피의 뜬금없는 학살 명령을 잠시 멈칫거렸을 뿐, 곧바로 이행해버리죠;;;

솔직히...이번 사태에서 루루슈의 기어스가 폭주 안해서 유피와 손잡았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특구에 참가하며 방심한 루루슈가 슈나이젤에게 기어스 실험체로 잡혀가고, 나나리는 다시 정치도구로 팔려가는 사태죠;;; 유피가 방패막이라지만...슈나이젤의 권력 앞에서 이미 황위계승권마저 포기한 어린 황녀 유피가 두 남매를 무슨 수로 보호를;;;ㅜㅜ

물론 선라이즈 주인공이니까 엔간해선 그런 전개는 안 갈 것 같지만요.

이번 화만 해도 원래 실수가 아니라, 다크히어로 루루슈 자신의 의지로 기어스를 사용하여 유피에게 그런 학살 명령을 내렸어야 정상인데, 루루슈의 인기(?!)를 위해서인지 루루슈는 여전히 수라의 길을 선택하지 못했죠;

뭐, 근본적으로 얘는 혁명주의자 같은 게 아니라, 착한 여동생 나나리와 룰루랄라 잘 먹고 잘 사는 게 지상 최대의 목적, 첫번째 목적이고, 부차적인 목적...두 번째 목적이 복수니;;; 결정적인 순간에 독기가 빠져 버리는게 이상할 것도 없지만요;
Commented by kirhina at 2007/03/24 15:10
브리타니아인들의 태도에 대한 분석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특구에 관한 서명운동을 하는 아이를 후들겨패는 브리타니아 귀족의 모습도 잠깐 나왔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공존의 장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마냥 싸우기만 하면 이해보다는 증오만 커져가는 것이니까요. 일단 공존의 장을 마련하고, 그 취지를 알려가기 시작하지 않으면, 공존은 영원한 꿈일 뿐이죠. (물론 그렇다고 특구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사태가 최악인 것은 ㅡ 이걸로 브리타니아인과 일본인이 화해할 수 있었던 일말의 가능성마저 없어져버렸다는거죠.
Commented by karin at 2007/03/24 15:16
참, 그러고 보니 비렛타 양도 예고에 보니 위기더군요;;;

...일레븐 폭동에 휘말려서 돌아가실지, 기억을 되찾고

강력한 군인 빠와로 폭도를 작살낼지...기대됩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3/24 20:06
이 세계 보면 볼수록 괴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북두의사나이 at 2007/03/24 20:55
완소 나나리만 행복해지면 OK!!!
(응?!)
Commented by 銀鳥-_- at 2007/03/24 23:33
뭐 저는... 그거 이전에 "군대"라는데가 다 그런 것 아닌가 싶어서 별 생각 안 했습니다 (....)
Commented by 구바바 at 2007/03/25 00:07
karin님께... 루루쨩은 결정적인 순간에 독기가 빠져버리는 마음여린 고딩이지요(...) 한편 비렛타는 위기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될까요?

kirhina님께... 현재 상황에서 보아, 공존의 장이 마련되었을 때 그것이 폭탄이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피는 너무나 즉흥적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좀 비약해서 생각해보면, 그 '일본' 때문에 순혈파에게 결국 암살되고 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존다리안님께... 스텝들이 다크한 하트로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세라문 월드와는 다르죠(...)

북두의사나이님께... 루루쨩이 공양미 3백석을 바치고(...)

銀鳥-_-님께...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쨌든 저 브리타니아의 기사나으리들이 기꺼이 즐겁게 그 명령을 수행한 것은 틀림없어보입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07/03/25 12:13
구바바님께...
좋은 의미로 괴이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도 많습니다.-베르세르크나
데빌맨,북두의권,바이올런스 잭 같은 것들...- 문제는 이쪽은 "나쁜
의미"에서 괴이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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